크루즈-디에즈의 예술은 ‘색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뿌리를 둔다. 그는 색의 성격을 여덟 가지로 나눠 자신만의 테마로 작품화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색채 유도, 색채 추가, 색채 공간, 색 가득 공간, 색 간섭 환경이라는 5가지 테마를 보여 준다.
첫눈에는 파란색, 남색, 검은색이 보이는데 작품 속 직사각형만 보면 노란색이 보인다. 가까이 가면 파란색과 흰색이 반복된 면 위에 검은색이 더해진 것이다.
크루즈-디에즈는 1963년 파란색 선 위에 검은색 선을 겹치면 보색인 노란색이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색 잔상 원리’를 이용한 이 작품은 색의 후퇴와 전진의 효과로 3차원 입체 그림처럼 다가온다.
초록, 빨강, 파랑 계열의 색에 검은 선을 더했을 뿐인데 자주색이 보이고 보라색이 보인다. 검은색이 주변의 색을 흡수하는 성질 때문에 실제 존재하지 않는 색이 눈앞에 나타난다. 선의 배치, 두께, 기울기를 사용해 유도하는 착시 현상에 ‘내 눈이 나를 속이는 작품’들이 펼쳐진다.
보는 사람의 움직임이나 위치에 따라 흰색이 도드라져 보이고, 색이 그러데이션되고, 선이 움직이는 듯 보인다. 검은색 선의 위를 가늘고 아래는 굵게 만들어 입체감을 주기도 한다. 크루즈-디에즈가 철저한 계산 아래 판화를 찍듯 작업을 했다는 도슨트의 설명을 들으면 ‘예술이 아니라 수학’이라는 생각이 든다.
전시장 계단을 내려가며 마주하는 작품에 빨주노초파남보 일곱 가지 색이 보인다. 가까이 가면 네 가지 색만 있다. 작가가 사망 전까지 다뤘다는 ‘색채 공간’은 빛이 반사되는 기울기를 과학적으로 조정해 스펙트럼을 유도한다. 1959년에 탄생한 ‘색채 추가’는 두 가지 색을 실제로 섞지 않고 섞여 보이는 현상을 만들어 낸다.
하얀 공간 안에 초록·빨강·파랑 빛으로 채워진 방은 ‘색 가득 공간’이다. 처음 들어가면 형광처럼 강렬하던 초록색이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옅어진다. 옆의 빨간색 방으로 이동하면 다시 짙어진 초록으로 변한다. 작가가 순수한 원색을 보여 주고 싶어서 만들었다는 이 공간에 ‘색이란 무엇인가’의 답에 대한 힌트가 들어있다.
마지막 ‘색 간섭 환경’은 4대의 프로젝터가 쏘는 세로의 빛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일정한 간격의 무늬가 2개 이상 겹쳐질 때 나타나는 착시 현상 ‘모아레’ 원리를 이용했다. 정지하거나 움직이는 직선의 빛이 하얀 공 위에서 둥근 패턴을 만들어 내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색 가득 공간과 함께 특별한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이다.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전은 사회적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해 실내 관람객 숫자를 20명으로 유지한다. 전시 기간 중 하루 4회(오전 11시, 오후 1시·3시·5시) 도슨트 투어를 하고 주말에는 가방 만들기 등 유료 체험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COLOR IN SPACE 색과 빛의 예술가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11월 14일까지 아트소향. 오전 11시~오후 6시(월·화 휴무). 성인 5000원, 소인 3000원. 체험 프로그램 3만 원. 051-747-0715.